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세르게이 코롤료프 (문단 편집) === 연구 경력 초기 === 졸업 후 항공기 설계국에서 일하면서 틈틈히 취미로 로켓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30년에는 파일럿 자격증까지 땄으며, 당시 소련에서 로켓 연구로 가장 유명했던 '반작용[* 로켓의 운동은 뉴튼이 발견한 작용-반작용의 결과인데, 이 때문에 로켓공학의 선구자였던 [[콘스탄틴 치올코프스키]]는 로켓운동을 "반작용운동"이라고 이름붙였고 이 연구그룹도 이렇게 이름이 붙은 것이다.] 연구 그룹'으로 전근되었다. 이 조직은 시대에 앞서서 로켓무기나 글라이더 유도폭탄 등등을 연구하고 있었다. 이 기관은 군소속 기관이고, 연구원들은 모두 군인신분이었기 때문에 코롤료프는 공군 소위가 되었다. 코롤료프는 빈센티니 막시밀리아노바라는 [[의대생]]과 연애를 했고 1931년 결혼을 했다. 1935년 빈센티니는 딸 나탈리아를 출산하여 아버지가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소련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연합해 소련에 쳐들어올 것이라는 편집증적인 의식도 있었기 때문에, 여러 실험적인 군사 개념들이 공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연구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서방에서는 SF 양판소물에서나 나오던 로켓연구에서 선도적이었다. 소련은 다른나라와는 달리 국가적으로 로켓연구를 밀어줘서 여러면에서 기술적으로 앞서 있었다. 예를들어 치올코프스키와 마찬가지로 로켓의 선구자인 독일의 헤르만 오베르트나 미국의 [[로버트 고다드]]는 전혀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했고, 개인적 연구에 머물렀기 때문에 연구에 큰 진척이 없었다. [[BBC]]에서 방송한 다큐멘터리[* 2008년 1월 EBS에서 '우주 전쟁(Space Race)'라는 제목으로 더빙판을 방영하였다. 미소 양국의 로켓개발을 주도하는 폰 브라운과 코롤료프의 이야기를 교차적으로 보여준다. 각각 폰 브라운은 [[오인성]], 코롤료프는 [[이정구]]. 여담으로 오인성 성우와 이정구 성우는 2021년 대원방송의 [[꼭두각시 서커스]] 더빙판에서 [[사이가 사다요시]]와 [[사이가 쇼지]]를 각각 맡아 [[성우 개그|왠지 모르게 대립관계가 재현되었다.]]]에 소개된 그의 과거는 순수하게 로켓을 좋아하는 '''덕국 청년''' [[베르너 폰 브라운]]과 그 본질이 다르지 않다. 이 연구소는 1932년 소련 최초의 액체연료 탄도로켓인 GIRD-9, GIRD-10을 개발했지만, 실전으로 쓰기에는 모자랐고, 이를 실전 무기로 양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계속 실패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소련보다 2-3년 후에 연구를 시작한 독일의 [[폰 브라운]]은 비슷하게 여러번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나치 정권의 지원을 계속 받아서 결국 V2를 완성해 냈지만, 그것도 독일의 패색이 짙을 때인 1944년에야 실전배치를 할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